X, 설치, 2007

스튜디어 건너편 건물에서 일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와 망원경 설치. 관객들은 설치된 망원경으로 그 여자를 엿볼 수 있다.

 

x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모두 사실이에요." 스튜디오 창문 사이로 가끔 눈이 마주 치곤 하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스튜디오로 불쑥 찾아와서 그녀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여기서 그녀의 실제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그냥 그녀를 X라고 부르기로 하자.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X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빠짐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X는 내 스튜디오 건너편의 Ben Pimlott 빌딩의 디자인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X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를 하고 있다. X는 지루한 회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으며,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닌다. X는 사무실에서 주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X의 하루하루는 지독히 지루하고 상당히 반복적이다. 특별한 일이라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X가 Ben Pimlott 빌딩과 내 스튜디오 건물 사이의 거리에서 Selfridges 백화점의 노란색 쇼핑백을 발견한 날도, X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조용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X는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됐으니까...... "

지금 X는 노란 Selfridges 쇼핑백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녀는 그녀의 눈을 믿을 수 없다. 쇼핑백 안에는 검은 권총이 들어있다. 이건 진짜 권총이다. 액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랗고 까만 진짜 권총. X는 노란 쇼핑백을 들고 잠시 고민을 한다. 뭘 어떻게 해야 되나. X는 갑자기, 아주 갑자기, 3년 전에 그녀를 떠난 한 남자를 기억해 낸다. X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X는 쇼핑백을 꽉 움켜 쥔다. 그녀가 왜 갑자기 그 순간 그 남자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냥 생각이 났다.


X는 이제 그 남자가 일하는 카페에 앉아 있다. 남자는 아직 X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X는 그가 여전히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X는 그의 아름다운 미소도 기억해 낸다. 한편, X는 카페가 너무 덥고, 밝다고 느낀다. X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X가 그 남자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남자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멀리서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를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X는 이미 커피 머신 뒤에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제서야 남자는 X를 알아 차린다.


남자가 X에게 묻는다. "어, 웬일이야? 어떻게 여길 다 왔니? 그 동안 잘 지낸 거야?" 이 순간, X는 할말이 없다. 사실, X도 왜 자신이 지금 이 남자 앞에 서있는 건지 모르겠다. X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3년 전에 왜 갑자기 그렇게 떠나 버린 거니? " 남자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뭐라고?" 남자가 되묻는다. 그 순간 X는 상당히 짜증이 나고, 꽤 기분이 상한다. X는 카페가 찌는 듯이 덥고 심하게 밝다고 생각한다. 너무 싫다. X는 이제 땀에 흠뻑 젖어서, 어지러움증마저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소리를 지른다. "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지금 너한테, 3년 전에 왜 떠난 거냐고 물었잖아! " 남자는 살짝 짜증도 나고, 약간 당황스럽기도 한 눈치이다. 그의 입가에 차갑고 건조한 미소가 비친다. X는 그의 이 차가운 미소를 좋아했었다. 그녀는 그가 웃을 때, 오른쪽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묻는다. " 이제 와서 왜 그게 궁금한 거지?" 아, 이제 X는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카페 안은 미친 듯이 덥고, 카페 안의 조명은 눈이 시리게 밝다. X는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다고 느낀다. X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마침내, 안타깝게도, 그녀는 폭발하고 만다.잘 들어 이 씹새끼야. 내가 지금 이 쇼핑백 안에 총을 가지고 있거든? 이거 진짜 총이야. 그러니까, 지랄아, 제대로 대답하란 말이야! 이 좆같은 새끼! 잘 생각하고 대답해라, 너. 안그러면, 내가 똥만 가득 찬 네 머리를 이 총으로 날려줄 테니까. 이 역겨운 개새끼!” X는 노란 Selfridges 쇼핑백을 그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며 히스테릭하게 마구 흔들어 보인다.


남자는 X가 지금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녀가 방금 뱉어낸 말들을 믿을 수 없다. 남자는 X가 미쳤거나, 많이 아픈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오, 불쌍한 X. 남자는 X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자는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는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어는 지를 기억해 보려고 노력한다. 3년 전이라…… X는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그녀는 두 손으로 계속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낸다. 엄마야. X는 이제 토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 순간, 남자가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연다. X는 남자의 차가운 미소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남자는 마치 X의 뇌에 모든 단어들을 하나하나 새겨 넣듯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한다.“는. 너의. 60년대식. 개념이. 싫었어. 너의. 그. 70년대. 풍의. 미니멀한. 스타일도. 지겨웠구. 그냥. 다. 지겨웠다구. 뭐랄까. 니가. 하는. 모든. 것은. 이미. 내가. 다. 어디서. 본. 듯한. 것들. 같았다고나. 할까? 난. 너의. 독창성이. 결여된. 진부함에. 진절머리가. 났었다구! 너한테는. 재미있는. 상상력이나. 흥분되는. 반전같은. 것.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어!


남자가 말을 마치는 바로 그 순간, X는 갑자기 몸 속의 모든 에너지가 싹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X는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한다. " 미안." X는 몸을 돌려 황급히 카페를 빠져 나간다. 카페를 빠져 나온 X는 남자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조차 못하고 나왔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맙소사. Selfridges 쇼핑백도 카페 안에 두고 나왔다. 하지만 X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X는 그 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X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 왔다. 오늘도 X는 언제나처럼 칙칙한 색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면서, X는 종종 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 본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짓곤 한다. 그 미소에서, 우리는 그녀가 그날 밤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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