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2, 설치, 2009

옆 가나 아트 센터에서 자신의 도플갱어를 발견한 토탈 미술관의 갤러리 지킴이에 대한 이야기, 망원경, 갤러리 지킴이. 관객들은 설치되어 있는 망원경으로, 이야기가 쓰여 있는 토탈 미술관의 창문을 통해 가나 아트 센터를 엿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 고용된 갤러리 지킴이는 이야기에서처럼 갤러리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으며, 관객에게는 '만지시면 안됩니다.' 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만을 말할 수 있다.

X2

 

"이 세상에 똑같은 게 두 개 존재할 때 가장 끔찍한 게 무엇일 것 같나요?" 그녀가 갑작스럽게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가진 그녀는,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난하고 평범한 얼굴의 20대 여자였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점이라고는 그녀의 투명한 시선 뒤에 드리워진 정체 모를 어두운 그림자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 날 그녀가 그렇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걸기 전까지는, 난 딱히 특징이 없는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그렇게 내 앞에 불쑥 나타나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이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녀가 내게 말한 것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야기 전개를 위한 편의상, 지금부터 그녀를 그냥 X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X가 토탈 미술관에서 갤러리 지킴이의 일을 시작한 건 5개월 전의 일이다. X에게 미술관을 지키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미술관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과 월호 잡지나 시시한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다만, 관객들이 예술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능한 눈에 띄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숨을 꾹 참는다던가, 무채색 옷만을 입고 몸을 가능한 작게 웅크린다던가- 과, 관객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가능한 말을 아끼는 것 –X에게는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만지시면 안됩니다' 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라는 문장만을 말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이 두 가지만이 X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 5개월 동안, X에게 특별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역시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X는 미술관의 오래된 먼지처럼, 무거운 침묵 속에서, 점점 더 보이지 않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였어요. 내 인생이 송두리 채 바뀌게 된 건......" X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던 어느 날, X는 문득 갤러리 창 밖을 내다 보게 된다. 그리고, 건너편 가나 아트센터에 있는 작은 뒷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지루함이 가득 묻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X는 그녀가 가나 아트 센터의 지킴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X는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계속해서 그녀의 담배 피는 모습을 훔쳐본다. 그 때, 가나 아트 센터의 그녀가 토탈 미술관 방향을 향해 좀 더 몸을 돌린다. 그 순간, X는 '아악' 하고 짧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토탈 미술관의 관객들은 갤러리 안에 있는 지도 몰랐던 그녀가 내지른 괴성에 잠깐, 깜짝, 놀란다. 그들은 X를 향해 잠깐 눈살을 찌푸렸으나, 곧 다시 예술 작품 감상을 계속해 나간다. X가 경악한 것은 다름아닌, 바로 가나 아트 센터 지킴이의 얼굴이었다. 가.나.아.트.센.터.의. 그.녀.의. 얼.굴.은. 바.로. 토.탈.미.술.관.의. X, 그.녀.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X는 그녀의 눈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X와 똑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도,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도 아주 똑같다. 그 순간, X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큰 충격을 경험한다.
그 날 이후로 X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X는 같은 하늘 아래 그녀가 둘이나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X는 갑자기 그녀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X는 고통과 번민의 나날을 보낸다. X는 그녀를 이렇게 지켜만 보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X는 아무래도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게, 그리고 누가 원본인지를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결심을 한 다음 날, X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나 아트 센터의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X는 고민을 한다. 그 때였다. 갑자기, 가나 아트 센터의 그녀가, 토탈 미술관의 X를 향해 정확히 고개를 돌려, X를 정면으로 뚫어지게 쳐다 본 것이. 가나 아트 센터의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렇게 오랫동안 X를 노려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X를 향해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X는 공포에 휩싸여 덜덜 떨면서, 그녀의 입술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어.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순간, X는 깨닫는다. 그녀가 이미 X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X를 향해, '꺼.져.' 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는 것을. 이제 X는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얀 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뒤이어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심한 두통이 밀려온다
.

" 그래서 결심했어요. 끝내 버리기로......" X는 텅 빈 눈으로 말했다.

이제 X는 눈빛이 매섭게 생긴 낯선 남자와 가나 아트 센터의 커피숍에 앉아 있다. "꼭 죽여주셔야 해요. 반드시 얼굴 쪽을 공격해 주세요. 북북 으깨주세요. 얼굴이 남지 않도록.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도록 말이죠." X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한다. 그리고 긴 침묵 뒤에 X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연다. "내 얼굴을 똑똑히 보세요. 그 여자, 나랑 똑같이 생겼어요. 나랑 하는 일도 똑같고. 내 얼굴을 잘 보고 기억해 두세요. 실수하지 않도록……” X는 남자가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느리게 카페를 빠져 나간다.

"어제였어요. 내가 그 남자에게 그녀를 부탁 했던 건. 그리고 아마도 이번 주 안에 모든 것이 정리 되겠죠......" X는 가나 아트 센터 쪽을 향해 멀리,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어쩔 수 없었으니까……"

X의 이상한 이야기로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진 나는, 그녀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나 아트 센터의 그녀가 어떻게 됐는지도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날 이후로 다시는 X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깨끗이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토탈 미술관 사람들 그 누구도 그녀가 없어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사실, X가 누구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창 밖 너머 가나 아트 센터를 볼 때마다 X가 생각난다. 그리고 가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지킴이들을 보면, 그녀들이 이쪽으로 얼굴을 돌릴 때까지 지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X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리고, 가나 아트 센터의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 텍스트의 오른쪽 창문 너머로 살짝 보이는 회색 건물이 가나 아트 센터이다. 여러분은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가진 그녀가 보이는가? 도대체 그녀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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