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20초 다른  패러다이스  

 

박보나, 2016

 

미국의 락밴드 건즈 앤 로지즈의 <패러다이스 시티>는 집으로 상징되는 이상적인 도시를 갈망하는 노래이다. ‘나를 지상낙원의 도시로 데려가 주세요. 잔디는 푸르르고 여자들이 예쁜 그 곳.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 라는 후렴구가 어지간히도 반복된다. 노래에서 지상낙원의 도시는 돈과 권력만 쫓는 비열한 현재와 대비되는 이상향이다. 안양 (安養)의 지명도 불교에서 극락정토의 세계로,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 ‘패러다이스 시티’를 의미한다. <패러다이스 시티>, 2016은 지금의 안양의 어디에서 잔디가 푸른 이상향을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패러다이스 시티>, 2016은 네명의 안양 시민이 안양의 네 곳의 다른 장소에서 건즈 앤 로지즈의 <패러다이스 시티>의 자기 악기 파트만을 온전히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찍은 비디오 작업이다. 이 작업의 퍼포먼스와 촬영은 신도심의 아파트촌이 내려다 보이는 명학역 오피스텔의 옥상, 학원가 사거리, 안양 예술 공원 내 인공 폭포 앞, 안양을 오가는 우편물들이 모이는 우편 집중국 네 곳에서 이루어졌다. 작업을 도와주신 네 명의 시민들은 악기를 취미로 배우거나 입시를 준비하는 아마추어 연주가들로, 여러모로 특별했다.

관양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윤상 학생은 베이시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포기했다. 그래도 주말에 레슨을 받기도하고, 연습실을 다니기도 하며 베이스 기타를 친다. 아침 일찍부터 진행된 촬영 날, 잔뜩 달궈진 옥상 위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차분하고 집중력 있는 연주를 해주었다. 퍼포먼스 사례비를 부모님께 드릴거라는 말에, 촬영 스테프들에게 기특하다는 칭찬도 들었더랬다. 키보드를 연주한 권소담 퍼포머는 숭실대학교 실용음악학과 학생이다. 촬영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왔는데, 카메라에 얼굴이 너무 번들거려 보인다는 지적을 받고 애써 한 화장을 닦아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촬영 시간에 맞춰 급하게 달려왔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시간까지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허겁지겁 연주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고 자신감 넘치는 연주를 해준 권소담 퍼포머는 화장을 닦아 냈어도 충분히 빛났다. 심미숙 퍼포머는 직장을 다니면서 토요일마다 드럼을 배운지 2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곡이 다소 어렵다면서, 여름 내내 평일에도 틈틈히 학원을 다니며 <패러다이스 시티> 를 연습했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멋진 연주를 들려준 심미숙 퍼포머는, 군악대에 있는 아들이 안양역에서 그녀의 연주 비디오를 보게 되면 꽤 놀랄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안양역에서 틀었던 본인의 퍼포먼스 비디오 장면이다. 정명한 퍼포머는 실용음학학과 입시를 준비하는 재수생이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범계역에 있는 기타 학원에 다닌다. 학원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번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밤늦은 촬영이 행정적인 이유로 더 늦어지는 바람에 지쳤을 법도 한데, 끝까지 자기 몫의 연주를 잘 주었다. 촬영이 끝나고 헤어진 후,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라 친구들이 자기를 볼까봐 너무 긴장했다며,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더 잘 하겠다는 감동적인 문자도 보내왔다. 네 분의 도움으로 촬영을 무사히 계획대로 마칠 수 있었다.

안양은 서울에서 가까운 위성 도시로, 한국 경제의 성장과 확장의 역사를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개발 논리 하에 지금도 점점 더 성장하는 도시인만큼, 신도심과 상대적으로 낙후된 구도심의 대비가 더 극명한 곳이다. 작은 가치와 느린 걸음 보다는 커다란 부피와 빠른 속도가 더 중요해진 도시이다. 나는 그런 안양의 가장 높은 아크로타워 앞에서도 패러다이스 시티를 보지 못했고, 19명의 여공의 목숨과 함께 화재로 사라진 비산동의 그리힐 봉제 공장 자리에서도 극락정토를 보지 못했다. 내가 안양에 대해 ;자유로움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만났던 안양 시민들, 특히 네 분의 퍼포머들이었다. 건즈 앤 로지즈의 노래에서처럼 ‘돈과 명예를 위해 계속 노력하며’, 편법과 비열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옥같은 현실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고,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네 분의 퍼포머의 모습에서 나는 안양의 이상향을 본 것 같다.  

 <패러다이스 시티>, 2016은 안양역에서 상영했던, 각각의 연주를 4채널 합주로 보여주는 버전과, 네 분의 연주를 이어서 원곡 전체를 완성한 1채널 버전 두가지 버전으로 완성되었다. 같은 음원을 듣고 연주했음에도, 녹음된 네 분의 연주 길이는 모두 달랐다. 게다가 편집을 해서 이어 붙이 1채널 버전은 심지어 원곡보다 20초나 길어졌다. 나는 이 20초에서 안양 시민들 각각의 개성과 특별함을 봤고, 임시적이었을지언정 안양을 친밀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나에게 안양은 그렇게  20초 다른 극랑정토, 패러다이스 시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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