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서의 퍼포먼스

 

배은아 (독립 큐레이터)

 

 

박보나와 나는 각자가 경험했던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처음통의동 브레인 팩토리에서 만난 팔등식 미인 박보나가 박보나가 아니고 자기가 진짜 박보나라고 다가와서 웃음짓던 모자를 쓴 박보나를 떠올리고는 했다. 당시 박보나는 작가이자 퍼포머이자 동시에 관객이기도 했다. 요컨대 박보나는 퍼포먼스라는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의 클리쉐의 조건들을 작동시키는 듯 했고 동시에 퍼포먼스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러 같기도 했다. 한편 나는 미술가들의 퍼포먼스를 설치하기 위해 작가와 미술관의 조건, 퍼포머의 요구를 중재하는 중간자이자, 퍼포머를 섭외하고 고용하고 훈련시키는 에이전시 역할을 해왔다. 짐작 건대, 박보나가 퍼포먼스 제작 과정에서 경험했을 부조리한 행정절차, 불합리한 노동조건,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오해, 그리고 개인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작업을 온전히 완성되게 놔두지 않았으리라.

박보나는 2014년 리움미술관에서 소개했던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1> 에서 전시장 지킴이들이 탭댄스 슈즈를 미술관에서 신는 것을 너무 불편하게 생각해서 발자국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 아쉬워했다. 그리고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2>에 출연했던 연기자들이 실재로는 각종 대회에서 모두 탈락되거나 당선되었어도 더 이상 출연 요청이 없어졌고 혹은 친구만 당선되게 된 실망스러운 미래를 응원했다. 2015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소개했던 <domestic-scale choreography 2>의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로 바닥을 젖게 하고 싶었지만, 갤러리 공간을 마냥 어지를 수 없어서, 지킴이 한 분이 상주해서 바닥의 물을 닦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저했다. 이렇게 우발적으로 일어난 그렇지만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은 박보나의 작업에서 실재하기도 한다. 2009년 이탈리아의 레지던시에서 제작된 <the missing>에서 비자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르완다 작가를 대신에서 박보나가 레지던시에 참가하기 되었는데 그 역시 비자 문제로 작업을 마칠 수 없게 되자, 원래 계획대로 사라진 여자에 대한 작업을 하는 대신에, 스스로 실종됨으로써 작업을 완성한다. 2013년 조선 갤러리에 소개된 <2’33’’>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기 위해 고용된 피아니스트의 주 업무가 연주하는 노동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노동으로 그 강도가 역전되면서 이 작업은 퍼포먼스라기 보다는 조각에 가까운 장치로 보여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단순히 오류 혹은 시행착오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역전된 의도들이 어쩌면 박보나가 퍼포먼스라는 형식을 빌어 작동시키는 리얼리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작가는 바로 여기에서 이 순간을 대처하면서 불안정한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박보나의 리얼리티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박보나는 주어진 상황을 분명하게 지각하는 작가이다. 형식적인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장소특정적 미술의 개념을 이어받아 장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 정치적 갈등, 역사적 사건 등에 주목하는 듯 하다. 하지만 실상 박보나가 주목하는 것은 통속적으로 한 장소에 부여된 완결된 정체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정체성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과 자본의 구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노동을 통해서 주체성을 획득하고 사회로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물질문명과 자유를 담보로 개인의 행복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었고 예술가의 노동 또한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파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예술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가능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박보나는 이 지점에서 퍼포먼스(노동)의 형식을 빌어 퍼포머(노동자)를 고용하고 그 노동(퍼포먼스)의 조건 속에서 예술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박보나는 창조자로서 예술가, 사회적 액티비스트로서 예술가, 혹은 경제적 패자로서 예술가라는 통속적인 정체성을 내려놓는다. 그는 오히려 ‘실제의’ 장소 에서 ‘실제의’ 사람들과 ‘실제로’ 협상하는 감독이자 고용자, 기획자이자 발언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박보나의 예술을 비-예술 혹은 무-예술의 비 일관성, 모호함, 불확실함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작가의 몸이 협상의 조건들을 끌어안음으로써 새로운 불안과 위험에 자신을 취약하게 남겨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스처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박보나는 2015년 신도지원작가 프로그램과 송은미술대상에 지원하고 수상한다. 한때 방송계를 휩쓸었던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에 이어 서바이벌 게임에 가까운 오락 프로그램이 기승을 부리며 급기야 현대미술작가들의 아트스타코리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찬반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척박한 현대미술시장에서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수상제도를 거부하기란 불가능하다. 정치적 행동으로써 수상의 거부는 또 다른 위계적 우월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오류를 만들어내고, 수상의 수용은 자본주의 사회에 종용될 수 밖에 없는 나약함을 인정하는 모순을 만들어내니, 이 갈등 상황은 여전히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박보나의 수상 지원이 예술가로서 정치적인 행동이었던 개인으로서 당면한 생계해결의 문제이던 박보나는 일관되게 침묵이 강요되는 노동의 목소리 - 이번에는 폴리 아티스트 - 를 찾아 나선다.

휴양지에서 들을 수 있을 만한 각종 자연의 소리를 인공적인 사물로 만들어내는 제작과정을 기록한 <코타키나 블루1>의 폴리 아티스트의 초토화된 열악한 노동환경은 자회사 인쇄기로 전형적인 휴양지 풍경을 인쇄해 주는 신도리코 홍보직원의 퍼포먼스 <코타키나 블루2>의 현대적인 노동환경과 대조를 이룬다. 비디오 퍼포먼스 <코타키나 블루 1>는 현장 퍼포먼스 <코타키나 블루 2>가 실행되는 샐러리맨들의 청결한 노동환경을 전면화하면서 노동의 주체로서 폴리 아티스트와 샐러리 맨의 몸을 정치화한다. 1967년 구봉 광산 붕괴사고 현장을 폴리 아티스트의 소리로 재현한 <1967-2015>는 송은아트스페이스가 삼척탄좌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에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1967년 부정선거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킬 퍼포먼스가 필요했던 국가는 구봉 광산 붕괴 생존자 구출작전으로 미디어를 도배하기에 이른다. 1967년 박정희 전대통령의 독재 국가와 2015년 박근혜의 자본주의 국가를 병치시키면서, 박보나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퍼포먼스와 미술관의 스펙터클을 위해 애용되는 퍼포먼스를 교차시키면서 퍼포먼스 자체를 정치화한다.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난 박보나는 2016년 가을 안양공공프로젝트 APAP에 출품할 신작 <패러다이스 시티>를 마무리하던 중 이었다. 박보나는 안양을 대표하는 공공장소를 섭외하고 아마추어 연주가들을 고용하여 건스 앤 로지스 (Guns N’ Roses) 의 ‘패러다이스 시티 (Paradise City)’를 연주하는 4채널 영상을 제작했다. 박보나는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여름의 폭염 속에서 고생했을 아마추어 연주가들을 격려하면서, 이 작업을 마쳤으리라. 박보나는 예술이 노동의 삶을 개선시키리라고 공허하게 희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철한 회의주의자도 아니다. 박보나는 아마도 예술과 노동이 일치하는 지점, 예술이 노동이고 노동이 예술일 수 있는 지점을 향해 이 땅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듯 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예술을 계속 하는가라는 자조 섞인 대화 중에 박보나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언급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적인 삶 속에는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최소 단위의 ‘노동(labor)’과 보다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사물을 창조하는 ‘작업(work)’, 그리고 타자와 관계하면서 갈등하는 정치적 ‘행위(act)’가 있다고 정의한다. 박보나는 예술 속에서 노동하고 예술을 작업하고 예술을 통해 갈등하는 정치적 존재로서 예술가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과 노동 사이의 이원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박보나의 의도는 그가 만들어내는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며, 우리에게는 그 것을 왜 지금 여기에서 깨어나게 해야 하는지 그 필연성을 포착할 몫이 남겨져 있다.

아티클 인덱스